두만강
두만강(豆滿江, 만주어: ᡨᡠᠮᡝᠨ
ᠪᡳᡵᠠ Tumen Bira, 중국어 간체자: 图们江, 정체자: 圖們江, 병음: Túmenjiāng 투먼찌앙[*], 러시아어: Туманная 투만나야[*])은 백두산의 동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유입되는 강으로, 중화인민공화국, 러시아와의 국경을 이룬다.
두만강은 백두산의 동쪽 기슭에서 발원하는 홍토수(紅土水)를 원류로, 석을수(石乙水), 홍단수(紅端水), 서두수(西頭水), 홍기하(紅旗河), 하이란강(해란강, 海蘭江), 가야하(嘎呀河, 알아하), 훈춘하(琿春河)등의 지류와 합쳐져 동해로 흘러드는 547 km(서두수의 발원지부터는 610 km)의 강이다. 유역은 33,800 km²이며,《한청문감(漢淸文鑑)》 만주지명고(滿洲地名考)에서 지리명이 유래되었다.
남쪽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량강도와 함경북도에 속하고, 북쪽은 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옌볜 조선족 자치주이다. 강의 하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라선시와 러시아 하산스키 군 사이의 국경이다.
두만강은 두만(豆滿), 도문(圖們) 외에도 역사적으로 두만(豆漫, 豆慢), 도문(徒門), 통문(統門), 토문(土門) 등으로 불리었는데, 이는 만주어의 음역에서 비롯된 것이다. '두만'의 원래 뜻은 만주어로 '만(萬)'을 뜻하는 투먼(tumen)에서 유래되었다
두만강 하구에는 15세기 초부터 19세기까지 조선의 영토였던 녹둔도(鹿屯島)가 있었다. 녹둔도는 약 4 km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두만강 하류의 섬으로, 이 섬은 두만강의 퇴적작용에 의하여 18세기에 연해주와 연륙(連陸)되어 육지가 되었다.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연해주를 차지한 러시아제국은 연해주에 붙은 녹둔도까지 점령하였다.
수질오염이 갠지스강 급으로 매우 심각하다. 두만강 하류인 투먼~훈춘 구간은 BOD가 무려 114.5ppm에 이른다.[7] 중국 동북부나 북한이 환경 보전에 크게 신경 쓸만큼 여유 있는 지역이 아니다보니, 중국의 산업시설 및 중국, 북한의 광산으로부터 별도의 하수처리 없이 흘러들어가는 폐수가 가공할 정도로 많다. 가히 죽음의 강이라고 해도 할 말 없는 수준.
2016년 8월 28일부터 9월 2일 사이, 태풍 라이언록이 동반한 폭우로 이재민이 14만명 발생하고, 138명이 숨지고, 400여 명이 실종되어 500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대참사. 과거 사례와 비교하면 북한 역사 최악의 재난은 아니나, UN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에서도 함경북도 지역을 기준으로 50~60년 사이의 최악의 재앙으로 지적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를 참조.
위키백과자료
토문강과 두만강
조선시대 간도 논란의 핵심이기도 하다. 숙종 시기 영토 획정을 위해 세워진 백두산 정계비 '서위압록 동위토문'의 '토문'이 두만강과 다르다는 이유로 조선이 19세기 후반 청나라에게 간도의 영유권을 주장한 것이 그 시초이다. 일부 교과서에서는 토문강과 두만강이 다르면 한국 땅이라는 주장이 입증되는 듯이 설명하지만, 문제가 있다.
일단 만주족 황족들이 다스리던 청나라가 자신들에게도 성역인 백두산 인근의 땅을 왜 군사적으로도 완전히 밟아놓은 나라에게 갑자기 떼어주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첫 번째 문제. 또한 토문강이라고 주장하는 송화강의 지류[9][10]는 국경으로 삼기엔 너무 짧고, 그렇다고 송화강을 경계로 삼는다는 주장으로 소급하면 만주 반토막과 연해주가 죄다 조선 땅으로 들어가는 괴현상이 생긴다. 정작 교과서에서도 간도를 한국에 포함한 지도는 하나도 싣지 않은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중국의 두만강을 통한 동해안으로 진출?
지도를 보면 지린성 훈춘시의 남동쪽은 북한과 러시아 영토에 막혀 아슬아슬하게 동해 바다와 접해있지 않다. 그러다보니 동해로 나가고 싶은 중국 정부가 동해로의 진출로를 모색하려고 북한에게 여러 가지 지원을 해주면서 나진항 이용권을 얻어가고 있다. 하지만 실용성이 있을지는 미지수이긴 하다.
과거 청나라와 제정 러시아 시절에 연해주를 놓고 갈등을 벌인 적도 있다. 양국은 네르친스크 조약과 캬흐타 조약이라는 국경 획정 조약을 맺었지만, 1800년대에 서구 열강들이 중국을 차례차례대로 전쟁에 이기면서[11] 아이훈 조약과 베이징 조약으로 지금의 국경선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와 별개로199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훈춘시 팡촨(방천,防川)일대에 내륙항구를 만들어 두만강 물줄기를 통해 동해안 진출을 노리고 있어 훈춘에서 40㎞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취안허(圈河)에서 부두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었다.고 한다.
투먼 시 图们市
중국 지린 성 옌볜 조선족 자치주
투먼시은 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옌볜 조선족 자치주에 위치한 도시이다. 인구는 13만6,000명이고, 이 중 58%가 한민족이다.
두만강에 접하고 있어서 합법적으로 북한 땅을 볼 수 있는 도시이다. 도문시 건너편에 있는 함경북도 온성군은 한반도 최북단 행정구역이며, 한반도 최북단 지점인 풍서리는 도문시에서 동쪽으로 불과 7km 지점에 있다. 북한 상인들이 꽤나 자주 드나들며 아울러 남한관광객들도 두만강을 배타고 둘러보기도 한다. 사실상 도문시의 유일한 관광자원.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남쪽으로 북한 함경북도 온성군과 이웃하고, 동쪽은 훈춘시, 서쪽은 연길시, 북쪽은 왕청현에 접해 있다. 북한의 라선시까지는 160km 떨어져 있다.
북한과 중국 사이를 잇는 다리 가운데 도문대교가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가끔씩 다리를 건너서 북한땅을 밟는 남한 관광객도 좀 있다. 북측도 이를 눈감아주는지 강이 끝나고 북한 땅이 시작되는 육지 위까지 오는건 묵인하는 듯 하다. 다만, 다리 너머에 있는 북한 검문소에 가까이 접근하게 되면 여러 모로 상황이 골치아파진다. 검문소에 일정거리 이상 접근하면 북한 경비대가 팔로 X표시를 하면서 달려와 확성기로 더 이상 접근하지 말고 사진도 찍지 말라며 우리말로 얘기한 뒤 돌려보낸다. 참고로 이 경비대원은 조선인민군 소속이기 때문에 쓸데 없는 대화를 시도하거나 접촉한 것 만으로도 최악의 경우 국가보안법에 저촉될 수 있다.
봉오동 전투가 이곳에서 벌어졌다. 이곳 수도국 봉오저수지에는 봉오동전투의 전적비가 있다.
나무위키 자료
봉오동 전투는 1920년에 발생한 중요한 역사적 전투로, 일제강점기의 한국 독립운동 역사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음은 봉오동 전투와 관련된 상세 정보입니다:
봉오동 전투 개요
- 전투 배경
- 시기: 1920년 6월 4일~6일
- 장소: 현재 중국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구 도문시 봉오동 일대
- 상황: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던 시기에, 만주 지역에서도 한국 독립군의 무장 투쟁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봉오동 전투는 이러한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발생한 전투입니다.
- 전투의 주요 인물
- 홍범도: 독립군의 주요 지도자로, 봉오동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지휘 하에 독립군은 일본군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 김좌진: 다른 독립군 지도자로, 봉오동 전투와 관련된 역사적 기록에 언급됩니다.
- 전투의 과정
- 봉오동 전투는 독립군이 일본 제국의 군대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전투입니다. 독립군은 일본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일본군의 기습을 방어하며,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 전투는 봉오동 근처의 계곡과 산악지대에서 이루어졌으며, 독립군의 전략적 지혜와 용맹함이 돋보였습니다.
- 전투의 결과와 영향
- 승리의 의미: 봉오동 전투의 승리는 한국 독립군의 사기를 크게 높였으며,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에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했습니다.
- 일제의 보복: 전투 후 일본 제국은 독립군에 대한 보복을 강화하였고, 이를 계기로 독립운동의 무장 투쟁이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지역과의 관계
- 용정시
- 용정시의 위치: 봉오동 전투의 핵심 지역인 도문시와 가까운 용정시는 독립운동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 문화적 의미: 용정시는 조선족 커뮤니티의 중심지로, 독립운동의 역사적 유적지와 문화재들이 보존되어 있으며, 지역 주민들에게 봉오동 전투의 중요성에 대한 교육과 기념이 이루어집니다.
- 도문시
- 도문시의 위치: 봉오동 전투가 실제로 벌어진 지역으로, 현재 중국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구에 속합니다.
- 유적지: 도문시에는 봉오동 전투와 관련된 기념비와 유적지가 있으며, 독립운동의 역사적 중요성을 기리기 위한 장소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현대적 의미
- 기념과 교육: 현대에 들어 봉오동 전투는 독립운동의 상징적인 전투로서 기념되고 있으며, 독립운동의 역사와 중요성을 알리는 교육과 행사들이 진행됩니다.
- 한중 관계: 봉오동 전투는 한중 양국 간의 역사적 연관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건으로, 양국 간의 역사적 교류와 협력의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봉오동 전투는 한국의 독립운동 역사에서 중요한 전투로, 용정시와 도문시는 이 역사적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현재에도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기념과 보존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중국 여행 중 두만강 강변공원을 탐방하신 경험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만강 강변공원에 대한 설명과 경험담을 바탕으로, 이곳의 주요 특징과 여행 정보를 다시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두만강 강변공원
위치: 두만강 강변공원은 중국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 동쪽, 두만강 변에 위치해 있습니다. 두만강은 중국과 북한의 국경을 형성하는 강으로, 강 건너편에는 북한의 함경북도 남양시가 있습니다.
길이: 공원의 총 길이는 약 5킬로미터에 달합니다.
강변의 특징: 두만강 중류에 위치한 이곳은 강폭이 약 30미터 정도로 비교적 좁습니다. 이러한 강폭으로 인해 강변공원에서의 경관은 상상했던 것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특히 예전에는 유람선이나 뗏목을 타고 북한과 중국의 산하를 감상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운영이 중지된 상태입니다. 운영 중단의 원인은 여행객들과의 마찰 등 부작용 때문이라고 합니다.
공원의 시설: 강변공원에는 유람선 선착장이 있었으나, 현재는 사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만주 지역의 특징
해의 뜨는 시간: 만주 지역은 해가 일찍 뜨는 특징이 있습니다. 연길시에서 새벽 3시에 이미 밝은 날을 맞이한 경험은 이 지역의 일출 시간이 일반적인 지역보다 빠른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옥수수밭: 만주 지역의 넓은 옥수수밭은 이 지역의 주요 농업 경관 중 하나입니다. 옥수수는 다양한 용도로 활용됩니다. 주요 용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 알코올 추출: 옥수수에서 알코올을 추출하여 여러 용도로 사용합니다.
- 메탄올 추출: 메탄올을 추출하여 휘발유와 같은 연료를 만드는 데 사용합니다.
- 가축 사료: 옥수수는 가축 사료로 많이 사용됩니다.
이러한 정보들은 만주 지역의 농업과 경제적 활용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이와 같은 여행 정보는 해당 지역의 문화, 경제, 자연 환경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추가로 궁금한 점이나 더 알고 싶은 정보가 있으시면 언제든지 물어보세요!
북한 남양시
남양시에 관한 내용은 북한 함경북도 남양시를 설명하는 정보로 보입니다. 북한의 남양시는 함경북도에 위치하며, 압록강 변에 있는 도시입니다. 남양시의 주요 특징과 관련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남양시 주요 특징
- 위치: 남양시는 북한 함경북도의 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압록강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중국 지린성 도문시와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 주요 표어 및 슬로건:
- 주체조선의 태양 김정은장군 만세!: 남양역 우측에 위치한 이 표어는 북한의 최고 지도자인 김정은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 만세!: 남양역 좌측에는 김일성 및 김정일 주의에 대한 찬양이 담긴 슬로건이 적혀 있습니다.
- 강양역 우측:
-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이 슬로건은 북한의 집단주의 정신과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는 문구로, 개개인의 노력과 헌신이 전체의 이익을 위한 것임을 나타냅니다.
참고 사항
- 압록강변: 남양시는 압록강과 가까운 위치에 있어, 강을 중심으로 한 자연 환경과 지리적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 중국과의 인접성: 이 지역은 중국 지린성 도문시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두 나라 사이의 지역적, 정치적 상호작용이 중요한 요소입니다.
남양시는 북한의 정치적 이념과 관련된 표어와 슬로건이 공공장소에 prominently 게시되어 있으며, 이는 북한의 정권과 이념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방식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표어들은 지역 사회의 이념적 정체성을 강조하며, 북한의 정치적 메시지를 표현합니다.
여행
중국 구역은 여행유의, 북한 구역은 여행금지 구역이다. 중국 도문에 있는 다리 중에 관광 목적으로 개방한 다리가 있다. 바로 도문대교가 그것. 티켓을 구매해 다리를 건너다 보면, 하얀 선이 보이는데, 이 선이 북한과 중국의 중간 지점이다. 단순히 선만 넘어가는 것에는 별 다른 제재가 없으며 의외로 한국인들이 두만강 유람하는 것에 대해서 금지 규정 같은 건 없기에 두만강을 배타고 유람해본 한국인 관광객들이 꽤 있다. 압록강과 마찬가지로 강 수역은 양쪽이 공유하는 것으로 보는 듯하다. 물론 검문소를 넘어가거나 강 너머의 북한 땅에 상륙하면 얄짤없다. 다리 양쪽에는 국경수비대원 2명이 서있고 기념품 가게에서 북한 화폐도 기념품으로 구입할 수 있다.
두만강 상류 지역은 국경경비대한테 뇌물만 좀 주면 건너기 쉽고 강폭도 좁아서 탈북루트로 애용된다고 한다. 오죽하면 별명이 도망강이라고 하겠는가.(…) 이런 식으로 중국에 밀입국했다가 남한으로 월남하는 사람들도 꽤 된다고 한다.
그런 두만강이라도 하류 쪽은 강폭이 꽤나 넓어져서, 러시아로 몰래 탈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사실 어찌저찌 넘는다 하더라도 주변에 남한으로 갈만한 곳은커녕 도시(대도시가 아니다!)도 없는지라 그나마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가야 하는데, 하필 여긴 반도 동쪽에 있는지라 우수리스크를 거쳐 수백 km를 가야 한다. 그리고 간다 하더라도 대사관은커녕 영사관도 드물어서 위험하다. 게다가 중국 동북지방[12]은 외형이 비슷한 한족이나 아예 같은 민족인 조선족이 많이 살기 때문에 쉽게 들킬 염려가 없지만, 러시아 극동지역은 슬라브족 백인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외형적으로 쉽게 탄로가 난다.
제천시와 중국 연변 조선족 자치주 도문시 간의 민·관 우호교류 확대 협의
주요 내용 요약
- 방문 배경 및 목적:
- 제천시는 2015년 8월 16일부터 19일까지 3박 4일 동안 중국 연변 조선족 자치주 도문시를 방문하였습니다.
- 방문의 주요 목적은 제천시와 도문시 간의 우호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제천 의병의 역사 발굴 및 문화 교류를 증진하기 위함입니다.
- 활동 및 성과:
- 교류 방문: 제천시 방문단은 연길시, 용정시, 도문시를 방문하여 제6회 중국 두만강 문화관광 축제에 참여하였습니다.
- 역사 발굴: 제천의병 정신 함양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을 목표로 의병 역사 유적지 발굴과 소년 의병 교육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실무 협의가 이루어졌습니다.
- 유적지 발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 전투 유적지와 백년부락 등의 의병 유적지를 발굴하였습니다.
- 중요 행사:
- 두만강 문화관광축제: 도문시에서 열린 두만강 문화관광 축제는 제천시와 도문시 간의 우호 관계를 강화하는 중요한 행사로, 연인원 약 90만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문화 행사입니다.
- 도문시의 인정: 행사 기간 중 도문시는 중국 내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선포되었습니다.
- 교류 성과:
- 청소년 및 문화 교류: 청소년과 문화예술인 간의 교류를 위한 포괄적인 협의가 이루어졌습니다.
- 민·관 협력: 제천시는 민간 및 공공 분야의 실무적 교류를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방안을 마련하였습니다.
이번 방문을 통해 제천시는 연변 조선족 자치주와의 역사적 연계를 강화하고, 청소년 및 문화 예술 분야에서의 협력을 확장하는 중요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2024년 8월13일
도문시에서 두만강을 보았다
북한의 남양시도 보았다
북한쪽 사진은 못찍게 감시한다
배를 타는것도 제한했다
지척인데 갈수가 없다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