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정
룽징 시 龙井市
중국 지린 성 옌볜 조선족 자치주
룽징시는 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있는 도시이다. 면적은 2591km², 인구는 26만여 명이고, 전체 인구 중 한민족 비율이 67%에 이른다. 가곡 <선구자>로 알려진 정자 일송정이 있으며, 시인 윤동주의 고향으로 그의 무덤이 있다.위키백과
룽징 [ Longjing , 龍井(용정), 龙井 ]
중국 지린성[吉林省] 옌볜조선족자치주[延边朝鲜族自治州]에 있는 도시.
중국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 중부에 위치하며, 주도(州都)인 옌지[延吉]에서 남서쪽으로 20km 떨어져 있는 상공업도시이다. 1913년에 옌볜현이 설치되었다가 1983년에 룽징현으로 개칭하였고, 1988년 7월에 시(市)로 승격하였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3·13만세운동의 현장(용정중앙소학교)을 비롯하여 1880년경 한국인이 우물을 처음 발견하였다는 용정 기원(起源) 우물이 있다. 삼림 및 광산자원이 풍부하여 동·은·납·아연 등이 채굴된다. 공업으로는 기계·화학·제지·야금·피혁 등이 생산된다.
두만강의 지류인 해란강(海蘭江)이 시내를 가로질러 흐르며, 주변의 비옥한 농경지에서는 쌀·콩·수수·옥수수·아마(亞麻)·사과·배 등 농산물을 산출한다. 창투철도[長圖鐵道:長春∼圖們]가 시내로 지나며, 교육기관으로는 3개의 대학원과 146개의 소·중·고등학교가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비암산의 일송정(一松亭), 3·13반일의사의 묘지, 시인 윤동주의 묘지, 한왕산고성(汗王山古城) 유적 등이 있다. 시내는 현대적 도시로 급성장하고 있으며, 백두산 관광기지로도 큰 몫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룽징 [Longjing, 龍井(용정), 龙井]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용정 : 용두레 우물
[ 龍井 ]
두만강 건너 만주벌판에는 일제시대에 한민족이 거주하며, 독립운동의 본거지가 되었던 용정촌(龍井村)이 있다. 윤태영이 작사한 가곡 ‘선구자’에는 ‘용두레 우물가에 밤새 소리 들릴 때, 뜻 깊은 용문교에 달빛 고이 비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이것은 용정촌의 설촌 역사가 용두레 우물에서 비롯되고, 이것이 원류가 되어 흘러가는 강물이 해란강이며, 강을 건너는 다리 이름이 용문교(龍門橋)로 연계되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나라 잃은 한민족에 의해서 황무지에 건설된 마을이 집단화되었으므로, 용정은 한민족의 결집력을 강화한 최초의 공동시설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민족 번영과 항일 독립을 위한 교육시설로서, 1906년에 이상설(李相卨)에 의해 세워진 서전서숙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용정 [龍井] - 용두레 우물 (땅 이름 점의 미학, 2008. 5. 15., 오홍석)
용정시는 중국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역사적, 문화적, 경제적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음은 용정시에 대한 종합적인 설명입니다.
1. 지리적 위치
- 위치: 용정시는 중국 동북부에 위치하며,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중부에 있습니다. 북한과의 국경에서 가까운 지역으로, 두만강 유역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 인접 지역: 북쪽으로는 북한의 함경북도와 접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도문시와 접해 있습니다.
2. 역사와 문화
- 역사적 배경: 용정시는 한민족의 주요 이주지 중 하나로, 조선족(한족 중 한국계 민족)들의 중요한 거주지입니다. 조선족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일본 제국의 압박을 피해 이 지역으로 이주하였습니다.
- 문화 유산: 용정시는 조선족의 전통 문화와 한국 문화의 융합된 형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의 조선족 문화는 한국의 전통과 중국의 전통이 혼합된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3. 주요 명소
- 일송정: 한국의 유명한 시인 윤동주가 생전에 자주 방문했던 곳으로, 시인의 작품과 삶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와 정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 용정시 제2중학교: 조선족 지역의 주요 교육기관 중 하나로, 지역 사회와 문화 교육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 조선족 박물관: 조선족의 역사와 문화를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지역의 문화적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4. 경제
- 농업: 용정시는 농업이 주요 산업 중 하나로, 주로 옥수수, 콩, 감자 등이 재배됩니다. 비옥한 토양과 적당한 기후는 농업 활동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합니다.
- 산업: 최근에는 경공업과 관련된 다양한 산업이 발전하고 있으며, 지역 경제의 다양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5. 교통
- 교통 인프라: 용정시는 도로와 철도 교통이 발달해 있으며, 연변 조선족 자치주 내 다른 주요 도시와의 연결이 원활합니다. 또한, 중국과 북한 간의 무역 및 교류의 중요한 거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6. 사회 및 교육
- 교육: 지역 내 교육 기관은 조선족과 중국 본토의 교육 커리큘럼을 혼합하여 교육하고 있으며, 지역 사회의 교육 수준을 높이고 있습니다.
- 사회적 특성: 조선족 커뮤니티의 문화와 전통을 유지하며, 지역 사회의 협력과 소통이 중요한 가치로 여겨집니다.
7. 관광 및 문화 행사
- 관광: 용정시는 역사적 유적지와 자연 경관이 어우러진 관광 명소를 보유하고 있으며, 매년 다양한 문화 행사와 축제가 개최됩니다.
- 문화 행사: 연변 조선족 자치주 내의 문화 행사와 축제는 지역 주민과 방문객들에게 문화적 경험을 제공하며, 지역의 전통과 현대 문화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용정시는 한국과 중국 문화의 만남의 지점으로서, 독특한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특성을 지닌 중요한 도시입니다. 지역 사회의 전통을 보존하면서도 현대화와 경제 발전을 추구하고 있는 도시입니다.
봉오동 전투는 1920년에 발생한 중요한 역사적 전투로, 일제강점기의 한국 독립운동 역사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음은 봉오동 전투와 관련된 상세 정보입니다:
봉오동 전투 개요
- 전투 배경
- 시기: 1920년 6월 4일~6일
- 장소: 현재 중국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구 도문시 봉오동 일대
- 상황: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던 시기에, 만주 지역에서도 한국 독립군의 무장 투쟁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봉오동 전투는 이러한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발생한 전투입니다.
- 전투의 주요 인물
- 홍범도: 독립군의 주요 지도자로, 봉오동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지휘 하에 독립군은 일본군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 김좌진: 다른 독립군 지도자로, 봉오동 전투와 관련된 역사적 기록에 언급됩니다.
- 전투의 과정
- 봉오동 전투는 독립군이 일본 제국의 군대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전투입니다. 독립군은 일본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일본군의 기습을 방어하며,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 전투는 봉오동 근처의 계곡과 산악지대에서 이루어졌으며, 독립군의 전략적 지혜와 용맹함이 돋보였습니다.
- 전투의 결과와 영향
- 승리의 의미: 봉오동 전투의 승리는 한국 독립군의 사기를 크게 높였으며,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에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했습니다.
- 일제의 보복: 전투 후 일본 제국은 독립군에 대한 보복을 강화하였고, 이를 계기로 독립운동의 무장 투쟁이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지역과의 관계
- 용정시
- 용정시의 위치: 봉오동 전투의 핵심 지역인 도문시와 가까운 용정시는 독립운동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 문화적 의미: 용정시는 조선족 커뮤니티의 중심지로, 독립운동의 역사적 유적지와 문화재들이 보존되어 있으며, 지역 주민들에게 봉오동 전투의 중요성에 대한 교육과 기념이 이루어집니다.
- 도문시
- 도문시의 위치: 봉오동 전투가 실제로 벌어진 지역으로, 현재 중국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구에 속합니다.
- 유적지: 도문시에는 봉오동 전투와 관련된 기념비와 유적지가 있으며, 독립운동의 역사적 중요성을 기리기 위한 장소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현대적 의미
- 기념과 교육: 현대에 들어 봉오동 전투는 독립운동의 상징적인 전투로서 기념되고 있으며, 독립운동의 역사와 중요성을 알리는 교육과 행사들이 진행됩니다.
- 한중 관계: 봉오동 전투는 한중 양국 간의 역사적 연관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건으로, 양국 간의 역사적 교류와 협력의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봉오동 전투는 한국의 독립운동 역사에서 중요한 전투로, 용정시와 도문시는 이 역사적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현재에도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기념과 보존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인하대, “통일신라 국경선은 지금의 중국 연변 용정시 부근”
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통일신라의 국경선이 현재의 중국 길림성 용정시 부근에 위치했다고 합니다. 이 연구는 통일신라 시대의 북계 위치를 재조명하며, 한반도와 만주 지역의 역사적 경계를 새롭게 정의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연구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통일신라 국경 연구의 주요 내용
- 통일신라의 국경선:
- 연구에 따르면, 통일신라의 북계인 정천군(井泉郡)은 현재의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일대에 해당합니다.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통일신라의 북쪽 경계였다는 주장입니다.
- 고구려와 압록강:
- 고구려의 압록강은 현재의 중국 요녕성의 요하로 해석되며, 고구려의 평양은 요녕성의 요양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일제가 한국의 역사적 경계를 왜곡한 점을 바로잡기 위한 연구 결과입니다.
- 문헌 사료 분석:
- 연구팀은 삼국사기, 신당서, 요사 등 여러 역사 사료를 비교 분석하여, 통일신라와 발해의 경계, 패수(평양과 신라의 경계 강) 등의 위치를 재조정했습니다.
- 발해 동경(지금의 중국 영안시)과 관련된 연구도 포함되었으며, 이 지역이 발해의 동경용원부였다는 주장이 새롭게 제기되었습니다.
- 일제의 역사 왜곡:
- 일제 강점기 동안 발간된 조선역사지리와 만주역사지리 등의 문헌이 한국 역사와 국경을 왜곡한 문제를 분석하였으며, 이를 통해 일제의 역사 왜곡을 실증적으로 증명했습니다.
- 향후 연구의 방향:
- 연구를 총괄한 복기대 연구소장은 이번 연구가 통일신라 국경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연구 결과는 한국과 중국 간의 역사적 경계와 문화를 새롭게 조명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 경북도의회와 연구 발표:
- 경북도의회 동북아역사연구회와 협력하여 진행된 연구 결과는 2022년 3월 24일에 발표되었으며, 통일신라의 국경선과 역사적 경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연구는 통일신라와 고구려, 발해의 국경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며, 한국과 중국의 역사적 연관성을 재조명하는 중요한 성과로 평가됩니다. 연구 결과는 향후 역사 연구와 교육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3.13 의사릉
배경: 3.13 의사릉은 중국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에 위치한 의사릉으로, 1919년 3.13에 사망한 독립운동가들의 묘소를 의미합니다. 이들은 일제 강점기 한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의사들로, 이들의 희생과 노력은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의의:
- 독립운동의 상징: 3.13 의사릉은 일제의 억압과 침탈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장소입니다. 이들은 한국의 독립을 위한 투쟁의 상징적인 인물들입니다.
- 역사적 기념지: 이 묘소는 한국 독립운동의 역사를 기리기 위해 마련된 곳으로,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그들의 정신을 전하기 위해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참배
참배의 의미:
- 독립운동가에 대한 경의: 참배는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헌신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행위입니다. 이들은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운 인물들이며, 이들의 노고를 기억하고 존경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역사적 교육: 참배를 통해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독립운동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참배 절차:
- 사전 준비: 참배 전, 해당 묘소의 역사적 배경과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충분히 조사하고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 참배 진행: 참배 시, 묘소에 조용히 묵념하거나 꽃을 바치는 등의 예의를 갖추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 과정에서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을 기억하고, 그들의 정신을 계승하려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배 장소:
- 용정시: 용정시는 중국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위치한 도시로, 한국과의 역사적 연관성이 깊은 지역입니다. 이곳에는 독립운동가들을 기리기 위한 기념 시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참배는 역사적 인물을 기리고 그들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중요한 활동입니다. 3.13 의사릉에서의 참배는 독립운동의 중요성과 그 정신을 되새기며, 한국과 중국 간의 역사적 연대와 연관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