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길
옌지시 延吉市
중국 지린 성 옌볜 조선족 자치주
옌지시는 중화인민공화국 동북지역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주정부가 위치하고 있는 현급시이자 주도이다. 인구는 52만명으로 조선족이 58.4%, 한족이 39.4%이다. 시내 곳곳의 상점들은 한글 간판들이 즐비한데다, 한국어로 방송하는 텔레비전, 라디오 방송국도 있다.위키백과
연길(延吉, 옌지)시는 지린성 동부에 위치한 도시이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중심도시이며, 인구는 약 639,000명이다. 동쪽으로 도문시와, 남쪽으로는 용정시와 접해있다.
중국 도시지만, 한자를 한국어로 읽은 연길이라는 표기도 쓰이며 표준국어대사전도 관용적 표현으로 인정하였다. 참고로 소수민족 자치구/자치주에서는 중국어와 더불어 소수민족의 언어를 우선적으로 병기해야 한다. 그래서 연길의 역이나 시설들에는 무조건 한국어가 병기되어 있다.
실제로 '연길'이라는 표현이 더 많이 쓰인다. '옌지'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중국조선족)들이 못 알아 듣는데, '연길'이라고 하면 '아 연길!'하고 알아듣는다. 물론 한족들이나 근래에 온 이주민들의 경우에는 '옌지'라고 해야 알아듣는 편이다.
중국에서는 남북한의 정취가 섞인 독특한 도시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북한에 비해 방문하기 쉽고, 인프라가 갖추어져있는데다가, 남한의 정취를 느낄 수 있으면서도 진짜배기 남한에 비해 물가는 싸고, 중국어는 통하기 때문에 관광가이드가 필요없는 염가판 한국이라는 평가를 받고있다. 물론 중국 평균에 비하면 물가가 비싸기는 하지만, 진짜배기 남한에 가려면 비자가 따로 필요한데다가 남한 물가가 중국 물가보다는 많이 비싸서 여행경비가 많이 들다보니 중국인 입장에서는 갈만한 도시가 맞기는 하다. 물론 연길말고도 중국 주요 대도시나 동북부 지역에서는 코리아타운이 꽤 존재하지만 중국 서민들이 가기에는 물가가 비싼 경우가 많다.
2024년 기준으로 한족 젊은 세대의 방문이 크게 늘었다. 특히 연변대 앞 대학성 등 상가의 한글 간판들이 주목받으면서 왕홍탄막벽(网红弹幕墙), 한궈창(韓國墻) 등으로 불리며 촬영 인파가 몰렸다
역사
역사가 오래된 도시는 아니다. 금나라 후기 여진족 군벌의 일파가 세운 동하의 후기 중심지이기도 했었으나 이후 동하가 망하면서 잊혀지게 되었다. 훗날 청나라 말에는 '국자가'(局子街)로 알려지기도 했었다. 연길시에 실제로 있는 도로명이다. 1902년 연길청, 1909년 연길부(府)를 거쳐 1912년 연길현이 되었다. 1932년 만주국 간도성의 성도(省都)가 되었다가, 1945년 시로 승격되었다.
1952년 중국조선족자치구의 성도가 되었는데, 1955년 자치구에서 자치주로 격하되었다. 1953년 연길시와 연길현이 분리되었고, 1983년 연길현이 용정현으로 개칭되었다. 1988년 용정현이 용정시로 승격되었다.
2012년 9월 3일 연변 조선족 자치주 창립 60주년 기념 행사를 성대하게 거행하였다. 총 3만 명이 입장할 수 있는 대규모 행사장을 신축하고, 약 1만 7천 명이 공연에 출연하였다.
경제
백두산 탐방객을 겨냥한 관광산업이 활발한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이에 따라 호텔, 백화점이 도시 규모에 비해 상당히 많은 편이다.
대표적인 호텔로는 연변국제호텔[4], 연변백산호텔[5], 대종호텔[6], 세기호텔[7], 그리고 2020년대 들어 후발주자로 각광받고 있는 카이로스 호텔[8]이 있다.
또한 시내의 대표적인 백화점으로는 연길백화상점[9], 백리성[10], 신세기빌딩[11] 등이 있다. 그러나 까르푸나 월마트 같이 타 도시에서도 볼 수 있는 대형마트는 존재하지 않으며, 한국어가 쓰인다는 특성상 많은 남한기업들이 진출해 있는데도 롯데마트나 이마트 같은 한국계 대형마트도 보이지 않는다. 이는 1990년대의 한국처럼 백화점이 사실상 대형마트의 역할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값도 중국 내에서는 비싼 축에 들어서 대형마트를 따로 건설할 부지를 얻기 힘든 것도 있고.
그런데 연길시가 이처럼 서비스업 및 상업이 고도로 발달되어있는 반면 농업, 공업의 비중은 그렇게 크지 않다. 서비스업의 비중이 거의 90% 이상인 기형적인 경제구조인 것. 이는 연변 조선족 자치주 내의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라서, 전반적으로 경제규모를 작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전체 GDP가 제주특별자치도의 전체 GDP보다도 낮다.
이렇게 연변 지역의 경제구조가 형성된 요인은 다음과 같다.
개혁개방과 더불어 상당히 많은 중국조선족들이 중국의 대도시나 대한민국, 미국 등지로 빠져나갔다. 대한민국으로만 가도 연변에서 얻을 수 있는 임금의 3~4배 이상을 벌어들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농업 종사자가 줄어들어 전반적으로 농업의 발전이 더뎠다.
동북삼성이 중국에서 중공업기지인 건 맞지만, 같은 지린성 조선족자치주 내에서도 연변 지역은 예로부터 농업이 중심이었다. 원래부터 중공업 기반이 적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서비스업이 주요 산업으로 떠오른 것.
한국, 미국, 중국의 대도시 등에 진출한 조선족들이지만 가족은 연변에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들이 소득의 일부를 연길로 송금하면 연변 전역에 대규모의 화폐가 풀릴 수밖에 없는 것. 이 화폐를 소비하기 위해서는 서비스업의 발달이 필수적이다. 이를 중국조선어로 로무수출(노무수출)이라 하는데 개혁개방 이후 연변조선족자치주 사회 전반 아주 큰 영향을 끼치고있다.
가장 가까운 중국 내 항구인 단둥까지 대략 780km가 넘는 거리를 8시간~9시간 동안 달려야 한다.[12] 훈춘은 러시아와 가깝긴 하지만 항구도시는 아니다. 그리고 북한과 인접해있어서 북한과 교류가 제법 활발하기는 하나, 북한은 일단 구매력이 형편없다. 중국과 북한의 국경지대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연변 지역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자본은 대한민국 자본이다. 또한 상시 왕래가 어렵기 때문에 북한의 항구를 쓰기 힘들다 보니, 2차산업이 발전되기에 애로사항이 꽃핀다.
러시아와도 가깝기는 하지만 러시아 동부 지역 자체가 그리 인구가 많은 지역이 아니라서 메리트가 적다. 그리고 연길 인근지역이 중국 서부지역처럼 자원 산지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니, 아무리 대륙의 기상 운운해도 이 정도 되면 뭔가 생산시설을 유치해도 그게 버틸 도리가 없다. 그래서 중국이 라선에 눈독을 들인다. 또 이렇게 생산시설이 버텨낼 수 없는 입지가 조선족 인구의 외부 유출을 가속화시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한편 국가가 국가이니만큼 물가는 당연히 대한민국보다는 저렴하지만, 위와 같은 서비스업 위주의 경제구조로 인해 다른 중국 내 중소도시를 생각하고 연길시를 방문했다가는 다소 당황할 수 있을 정도로 물가가 높은 편이다. 그나마 도시의 규모가 작아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체감비용이 많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택시 기본요금이 5위안인데 작은 규모의 시가지인지라 교외로 빠져나가더라도 30위안 안에서는 해결이 가능하다. 버스는 모두 거리 불문하고 2위안인 것도 특이사항이다. 오랜 기간 동결되었다가 2017년부터 대중교통 가격이 인상되었다고는 하지만 영향은 미미한 수준. 대신 식당에서는 얄짤없어서 준수하게 한 끼를 해결하려면 최소 3~40위안은 생각해야 한다.
연길시 개발구에는 NHN서비스, 아사달, 심플렉스인터넷 등 다수의 한국계 기업이 진출하여 현지 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연길시 정부도 서비스업에 치우친 경제구조의 문제점을 알아차리고 개발구를 건설하고 기업을 유치하고 있지만, 그리 시원치는 않은 모양이다. 저 한국계 기업들도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 산업이다.
물가의 경우, 중국의 대졸 평균 월급이 2015년에 3,300위안(한화 약 62만 원)인데, 연길시의 식당 종업원의 월급이 2013년에 벌써 4,000위안(약 75만 원)을 넘어섰다. 이는 어디까지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얘기고, 연길시에서 회사에 취직한 사람들은 중국 평균과 차이가 더더욱 벌어진다. 거의 2~3배 정도. 심지어 같은 연변 안에서 연길시와 자동차로 고작 20분 거리인 용정시도 공무원 월급이 겨우 3,000위안 좌우라고 한다. 당연히 그만큼 물가가 비싸다. 이로 인해 엄청난 부작용을 유발하게 되는데 아래에서 서술한다.
음식의 경우에는 전통적으로 함경도나 평안도 음식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비교적 간이 심심한 특성이 있지만 1990년대 한중수교 이후로 남한과 교류가 잦아지면서 남한에 방문하거나 일하는 경우가 많아 남한음식에 맛을 들이는 경우가 많고, 남한에서 일하다 온 노동자들이 연변으로 돌아오면서 식당을 차리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남한에서 먹던 것과 비슷한 음식들을 쉽게 맛볼 수 있으며, 원할머니 보쌈이나 롯데리아[13] 등 남한 프랜차이즈도 제법 들어와있다. 그렇기 때문에 닭갈비나 부대찌개, 고추장 떡볶이와 같이 남한에서도 비교적 근래에 생긴 음식들도 연변에서 비슷하게 먹을 수 있다.
그래도 냉면이나 순대, 개장국 같은 경우에는 연변 고유의 특색이 남아있는 편이다. 양꼬치집도 성업하고 있다. 한국에서 양꼬치집으로 많이 쓰이는 이름이기도 하다. 물론 중국 요리점 이름으로는 홍콩이 많이 쓰이는 편이지만. 연길에서는 '뀀'이라는 간판을 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꼬치라고 해도 어느정도 알아듣는 편이기는 하다. 현지에서는 그냥 중국어 발음인 촬이라고 하는 경우가 제일 많다.
순대를 많이 파는데, 돼지 선지와 쌀이 들어가 약밥과 같은 식감을 자랑한다.
교통
항공
연길 조양천 공항이 연변의 주요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연길시 서남쪽에 위치한 조양천진에는 연변조선족자치주내 유일한 공항인 조양천 공항이 있다. 조양천진이 원래 행정구역상으로는 용정시에 속해 있었는데, 최근 조양천진이 연길시에 편입되었다. 사유는 당연히 이 공항 때문. 따라서 용정시의 행정구역은 실질월경지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지린성에서는 창춘 룽자 국제공항에 이은 2번째 규모이며 동북3성[14] 공항 규모로만 놓고 봤을 때 선양시, 창춘시, 하얼빈시, 다롄시에 이은 5위의 공항이다.
인구 60만에 불과한 연길이 600만명 규모 이상의 대도시들과 비교될 만한 규모의 교통량을 보인다는 얘기. 연변에 영향을 끼치는 대한민국의 자본력이 얼마나 큰 지를 알 수 있는 부분.
대외 공식명칭은 연길조양천국제공항(중국어 간체 : 延吉朝阳川国际机场, 중국어 번체 : 延吉朝陽川國際機場)이며 현재 민용 항공기와 군용기가 함께 사용하고 있다. 공항 활주로에 전투기가 있으며, 주로 점심에서 오후 시간 대에 전투기 비행 훈련을 하는 터라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들로부터 소음으로 인한 민원이 높은 편이다. 그래서 이 공항을 연길시 서북부의 금성촌[15] 주변으로 이전하려는 계획이 있지만 아직 삽도 뜨지 못하고 있다.
2000년 6월에는 연길 - 김포 간 전세기 편을 시작으로 국제공항으로 승급 되었으며, 해당 노선은 2001년에 김포에서 인천으로 바뀐 뒤에도 전세기 편을 운항하다가 2003년부터 정기 운항 편으로 운항을 시작하였다.
실제 대한민국에서 백두산을 갈 때 이 공항으로 입국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나, 2019년까지만 해도 항공권 운임이 비쌌다. 따라서 하얼빈, 창춘에서 입국하는 루트가 더욱 저렴한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하지만 제주항공과 중국동방항공이 경쟁에 참여하면서 항공요금이 내려가 현재는 한국돈 20만원대, 비싸도 30만원대에 형성되어 있다.
국제선
대한민국 방면으로는 인천국제공항으로는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중국국제항공, 중국남방항공이 각각 하루 4편씩, 부산김해국제공항으로는 중국남방항공과 에어부산이 주 5회 운항하고 있고 청주국제공항으로는 티웨이항공과 중국남방항공이 주 6회씩 운영하고 있다.대구국제공항도 티웨이항공에서 주 3회 운항 예정이다. 제주국제공항에서 오는 비행편도 생겼다. 에어부산은 2014년 9월 1일에 취항한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일본, 특히 나리타 국제공항 방면으로의 노선은 없다. 2015년에 연길-오사카 직항편을 개통하긴 했지만 1주일에 2편이고 도쿄가 아닌 오사카다. 인천국제공항에서 환승할 수 있는 로스앤젤레스 외의 미주 방향으로 가는 데 애를 먹는다. 중국 국내선을 이용한다면 베이징시나 상하이시까지 간 뒤 그곳에서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물론 아예 인천에서 환승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어떤 방법을 쓰든 대기시간이 생기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
중남미로 갈 경우 연길-미국 티켓과 미국-중남미 티켓을 따로 끊어야 싸게 치는 경우도 있다. 연길에서 멕시코 시티까지 간다고 예를 들면, 연길-멕시코시티를 한 구간으로 끊을 경우 소요시간도 엄청 걸리고 단기체류 + 비수기 기준 1,700달러나 한다. 반면 연길-LA 구간을 아시아나항공으로 이용하고, LA-멕시코시티를 볼라리스 항공으로 따로 끊을 경우 1,300달러 정도면 갈 수 있다. 만약 연길에서 이보다 더 내려가서 남미로 가게 되면 상당히 골치아파진다. 연길-상파울루의 경우 북경까지 국내선이나 버스를 타고 가서 북경-상파울루 구간을 한 구간으로 끊는 게 나을 지경. 어차피 브라질 가려면 대서양을 건너야되고, 역방향이 아니라서 상관없다.
상술했지만 인천-연길행은 항공료가 상당히 비싸다. 할인 항공권끼리 비교해도 인천공항이 386마일(아시아나항공 기준)밖에 안 하는데 2,000마일인 인천-괌 항공료의 거의 2배에 육박한다. 따라서 한국 여행객들을 기준으로 울란바토르[16], 알마티, 워싱턴DC와 함께 국적기 직항 항공료 비싸기로 악명높은 4대 목적지로 손꼽힌다.
코로나 이후 항공편이 급감하여 1주일에 딱 1번 목요일 아침 대구국제공항에서 티웨이편이 출발한다. 이 항공권이 참 기가 막힌게, 저가 항공사이지만 대한항공 일등석 인천-연길 왕복보다도 비싼, 그야말로 살인적 항공료가 나온다. 0(대한항공의 경우 인천-연길 간 일등석 공시운임은 왕복 130만 원이 안 된다.) 어쩌다 싼게 나와도 편도로 130만 원대이고 기본 160만 원은 예상해야 한다. 다만 이건 티웨이가 비싸게 파는게 아니라 여행사 전세편 개념으로 여행사에서 비싸게 판매하는 거라는 걸 감안해야 한다. 티웨이항공의 공시운임은 60만원정도라 더 비싸게 받을 수 없다
사회문제
연길시가 겪는 가장 큰 사회문제는 경제적 이유로 인한 조선족 인구의 유출, 그리고 외부 인구의 유입이다.
중국 내에서도 톱 클래스의 소득수준인데 왜 조선족 인구가 빠져나가냐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높은 월급수준이 바로 한국에 나가있는 조선족들이 연길로 송금하면서 물가를 억지로 끌어올려 덩달아 월급이 같이 올라간 것뿐이라는 게 문제다. 소비가 물가를 끌어올렸으니 소득이 따라갈 수 없는 건 당연한 이치.
연길의 물가수준은 생각보다 높다. 연길시에 벤츠 직영점이 있다! 그러다보니 조선족 인구는 계속하여 외국으로 빠져나가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월급 수준이 중국 평균의 1.5배 정도 되어도 물가 수준은 중국의 몇 배나 되니 버틸 수가 없다. 때문에 중국조선족들이 중국의 대도시인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이나 미국, 호주, 싱가포르 등 외국으로 계속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단적으로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뉴욕에 거주하는 조선족만 해도 20만명이 된다고 한다. 연길시보다 미국에 조선족이 더 많은 것이다. 이 점은 시드니나 싱가포르도 마찬가지로 싱가포르의 차이나타운인 우차수에는 조선족들이 꽤 있다. 겉으로는 만다린을 써서 구별이 안 되지만.
한편 특별행정구인 홍콩에도 한국슈퍼 등에서 조선족들이 많이 일하며, 홍콩시민들은 대륙인의 일종으로 별로 안 좋게 취급하고 일부는 북한에서 온 사람들로 오해한다. 가끔 인터넷에 '홍콩 이민국이 취업비자 발급을 엄격히 금지하는 북한인들이 어떻게 들어와 있냐'며 목격담이 올라온다. 원래 북한과 캄보디아, 네팔,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중국 대륙 후커우 보유자 등은 취업비자 발급이 금지된다. 대륙인들은 별도 절차를 밟아야 하며 이마저도 홍콩에서 대학을 졸업했거나 영미권에서 유학해야 학력이 인정된다. 그러면 "이들은 중국의 소수민족조선족이며, 남한 표준어와 다른 말씨를 구사하는 평안도, 함경도, 경상도[26] 출신 이민자의 후손이 많아 제3자가 봤을 때 북한사람으로 오해하기 좋다"는 설명이 올라온다.
중국 정부도 연길시의 위치나 민족구성 등의 특수성을 보고 2011년부터 개발한다 어쩐다 설레발을 쳤다. 대표적으로 연길시, 용정시, 도문시를 합병하는 이른바 옌룽투(延龙图)계획. 3개의 시를 합치면 한국의 광역시 정도의 크기와 인구가 된다. 하지만 저 살인적인 물가 때문에 GG를 쳤는지 아직까지도 소문만 무성할 뿐 별다른 행동을 보이고 있지 않다. 아무래도 외부 인구가 유입되게 하여 살인적인 물가를 강제로 하락(또는 동결)시킨 다음 다시 손 볼 생각인 듯하다. 실제로 연길시 물가는 2013년 이후로 동결수준이다. 중국의 물가가 급속하게 올라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연길시에 남은 조선족 인구는 15만이 채 안된다고 한다. 대신 연길시 인구는 65만(2014년)까지 늘었고 70만을 찍고 있다. 위의 경제 항목에서 서술했듯이 연길시의 월급수준이 중국 다른 지역에 비해 현저히 높다는 게 알려지자 외부인구가 급속히 유입되었다. 2010년까지만 해도 40만 정도였던 인구가 2014년에 65만까지 4년 사이에 거의 1.5배 이상으로 늘어난 셈.
게다가 늘어난 인구가 연변의 다른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라거나 하다못해 길림성이나 동북 3성에서 온 사람들이라면 또 모를까, 대부분은 한족이 아닌 중국 중서북지역에서 온 위구르, 키르기즈, 카자흐 등 투르크계 소수민족들과 몽골인들이다. 이들은 중국어도 되지 않고[27] 그렇다고 연변말이나 한국어가 될리도 없기 때문에 와봤자 취직도 안 되니 생계를 유지하는 방법이라곤 도둑질. 시내에 나가면 진짜 좀도둑이 많다. 경찰한테 잡힌다고 해도 중국어를 모르기 때문에 경찰도 골칫덩어리이고. 치안이 나쁘지는 않지만 지갑만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
아직까지 간판 정도는 중국어와 한글로 병기되어 있는 수준이다. 중국법으로써 연길의 모든 가게는 중국어 옆에 한글로 표기를 해야 한다. 이것은 다른 소수민족 자치구도 마찬가지다. 신강에서는 아랍 문자의 향연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연길시에서 한국어가 통할 거라는 생각은 그냥 버리는 게 좋다. 한국어에 익숙한 조선족의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의 대도시나 외국에 갔고 남아있는 건 한국어에 그리 익숙하지 않은 중년과 노년층들 뿐이다. 정말이지 10년 20년 후가 어찌 될지 궁금하기도 하고 다른 한 쪽으로는 걱정되기도 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