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여행

설악산 영시암

산에서놀자 2024. 6. 17.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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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시암
 
소개글
강원도 인제군 북면 설악산(雪嶽山)에 있는 조선후기 삼연 김창흡이 창건한 암자.
 
역사적 변천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이 1709년(숙종 35년)에 창건해 6년간 머물렀다. 그 뒤 폐허로 남아 있던 것을 1691년(숙종 17) 설정(雪淨)이 승당과 비각을 중건했다. 1760년(영조 36) 석존불을 개금했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 주지 이기호(李基鎬)가 중수했고, 1950년 6·25전쟁으로 전각이 소실된 것을 1994년 백담사 주지 설봉도윤(雪峯道允)이 중창했다.
 
내용
1709년 조선 후기의 유학자 김창흡이 심원사 남쪽의 조원봉 아래에 정사를 창건했다. 그는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부친 김수항(金壽恒)이 사사(賜死)된 뒤로는 세상에 진출할 뜻이 없었는데 1705년(숙종 31) 모친상을 마치고 설악산으로 들어가 백담사에서 3년을 지내다가 1707년(숙종 33) 조원봉 남쪽 벽운사 옆에 벽운정사(碧雲精舍)를 지었다. 이후 건물에 불이 나자 서쪽으로 몇 리 더 깊숙한 곳에 정사를 다시 지어 머물렀다. 방을 연묵실(淵黙室), 당을 산립당(山立堂), 다락을 연백루(延白樓) 혹은 지백루(知白樓)라고 하였다.

「삼연 김선생 영시암 유허지비(三淵金先生永矢庵遺墟之碑)」에 의하면 “기축( 1709)년 10월에 다시 절에 돌아왔다가 동쪽 수리(數里)에 있는 조원봉 아래 북쪽에 판잣집 8칸을 짓고 영시암(永矢庵)이라고 이름했다”고 한다. 영시암이란 이름은 김창흡이 이 절에 은거하여 죽을 때까지 세상에 나가지 않겠다는 맹세의 뜻을 담고 있다. 그가 이곳에 머문 지 6년이 되던 해인 1714년(숙종 40) 11월에 공역(供役)을 하던 찬모(饌母)가 호랑이에게 물려 변을 당하자 춘천으로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사찰은 그 뒤 폐허가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영시암 [永矢庵]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용대리 백담사주차장에서 7시에 마을버스를 타고 백담사에 도착했다

집에서는 새벽 3시에 출발 했다
용대리 주차장에 6시40분에 도착했다

백담사는 들어가지 않고
바로 영시암을 향해 출발했다

수렴동계곡 백담사를 조금 지나 강가에 돌탑들이 많이 보인다
정성이 대단하다
마음을 모아 모아 정성으로 만든것 같다
이쁘고 아름답다
사진으로 담았다

영시암으로 가는길은 그리 어려움이 없다
완만한 계곡길을 계속 따라 걸어 가면 된다
아름다운길이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생각해 본다
불교신자들이 백담사, 영시암, 오세암, 봉정암, 영시암, 백담사로 내려오는 길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보였다
우리는 불교 신자들의 고행길, 수랭길, 깨달음의 길 이라고 생각이 든다

영시암으로 가는길은 그런 생각이 들면서 이것 저것 생각을 해 보았다

초여름의 초록숲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묻어 있다
여름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옆으로 흐르는 수렴동 계곡물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어느새 영시암에 도착한다
영시암은 믹스커피를 준다
한참을 걷다 보면 당분을 보충하고 싶은데 그때 바로 그순간이 염시암에 도착했을때 이다
백담사에서 3.5키로 걸어온 길이다
수렴동대피소에서 오면 1.3키로 온 시점이다
영시암은 빼어난 사찰은 아니지만 거리적 중심에 있어서 쉬어가기가 아주 좋은 장소이다
영시암에서는 화장실도 이용하고 감로수도 마시고 믹스커피도 한잔하시고 복전함을 관심있게 보시면 좋을것 같다
영시암은 쉬어가기 좋은 암자이다

 

2024,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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